1781년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을 떠났을 때, 그는 단지 고용주를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음악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음악이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가 이 장의 출발점입니다.
모차르트가 선택한 언어는 소나타 형식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음악가들이 가장 활발하게 탐구하던 구조였고, 하이든이 이미 그 가능성을 열어놓은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식은 단순히 음악적 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사고방식이 소리로 구현된 것이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한 시대의 사고방식을 들을 수 있다면, 18세기 후반 유럽의 소나타 형식만큼 명확한 사례도 드물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사회사가 아닌 음악 그 자체를 살펴봅니다. 형식, 구조, 사고의 흐름을 다룹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몽주의라는 시대정신이 어떻게 음악적 논리로 구현되었는지 확인합니다.
3.1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바흐의 푸가 — 복잡성의 세계
1750년 7월 28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습니다. 바로크 음악은 바흐와 함께 정점에 도달했고, 동시에 끝났습니다. 그가 남긴 푸가는 복잡성의 극치였습니다. 여러 성부가 동시에 진행하고, 주제가 전위되고 역행하며, 대위법적 기교가 끊임없이 펼쳐졌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C장조 푸가(BWV 846)를 들어보십시오. 하나의 주제가 제시되고, 그것이 다른 성부에서 모방됩니다. 곧 또 다른 성부가 들어오고, 주제는 서로 얽히며 복잡한 직물처럼 짜입니다. 어디가 주제이고 어디가 대선율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성부가 중요합니다.
음악학자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는 바흐의 푸가를 "수학적 정밀성과 신학적 깊이의 결합"이라 불렀습니다.¹ 바로크 음악은 수직적 화성보다 수평적 선율을 중시했고, 단순함보다 복잡함을 선호했으며, 명료함보다 신비로움을 지향했습니다. 이 음악은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려 했고, 신의 영광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신을 위한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나 바흐가 죽은 뒤 음악은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갈랑 양식의 등장 — 단순함과 우아함
1750년대와 1760년대 유럽 음악계에서는 새로운 취향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갈랑(galant) 양식이었습니다.
갈랑은 프랑스어로 '우아한', '세련된'을 뜻합니다. 음악사학자 다니엘 헤르츠(Daniel Heartz)는 갈랑 양식을 "바로크의 학식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자연스러움과 명료함의 추구"라고 정의했습니다.² 이 양식은 복잡한 대위법 대신 단순하고 명료한 선율을 선호했고, 무겁고 장엄한 음악 대신 가볍고 우아한 음악을 추구했습니다.
궁정의 살롱에서, 부르주아의 응접실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음악을 원했습니다.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P.E. Bach)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C. Bach)는 이 새로운 시대를 대표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아버지보다 훨씬 가벼웠고, 훨씬 명료했으며, 듣기 쉬웠습니다.
복잡한 푸가 대신 단순한 선율과 반주가 등장했고, 얽힌 성부 대신 명확한 화성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취향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고전주의 소나타 — 명료성의 구조: 하이든이 고정하고 모차르트가 놀다
1770년대에 이르면 하이든이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 유동하던 관행을 하나의 논리적 구조로 고정합니다. 소나타 형식입니다. C.P.E. 바흐,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샤머 등이 실험하던 유동적인 관행을 하이든은 30년의 에스테르하지 격리 속에서 체계화했습니다. 음악학자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는 하이든의 Op.20을 "소나타 형식의 성숙"이라 평가하며, "이 작품에서 하이든은 형식 자체를 논증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습니다.3 모차르트는 그 형식을 물려받았고, 곧 그것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 차이는 초기 작품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열여섯 살 모차르트가 쓴 피아노 소나타 1번 C장조 K.279(1775)는 교과서처럼 형식을 따릅니다. 형식을 배우는 학생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이 형식을 완전히 소화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 장의 끝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같은 언어를 다르게 말했습니다. 하이든이 소나타 형식의 논리적 구조를 가장 명료하게 구현했다면, 모차르트는 그 논리를 감정의 언어로 가장 뜨겁게 밀어붙였습니다. 하이든의 소나타가 잘 설계된 논증이라면,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그 논증이 피를 갖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형식을 마스터한 다음, 형식을 가지고 노는 것. 그것이 모차르트가 소나타 형식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바흐의 푸가가 복잡하게 얽힌 미로였다면, 고전주의 소나타는 명확하게 표시된 지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는 계몽주의의 이성과 닮아 있었습니다.
3.2 소나타 형식이란
소나타 형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제시부(Exposition), 발전부(Development), 재현부(Recapitulation)입니다. 그러나 각 부분은 단순한 구획이 아닙니다. 정밀하게 맞물린 기능적 단위들이 하나의 논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제시부 — 논증의 무대를 설치하다
| 제시부 구조 — 제1주제 → 이행구(Bridge) → 제2주제 → 이행구 → 종결주제. 두 개의 대립적 세계가 설치됩니다. |
제1주제는 으뜸조로 시작합니다. 대개 리듬이 강하고 단호합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K.457의 첫 마디가 그렇습니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논증이 되지 않습니다. 곧바로 이행구(Bridge)가 등장합니다. 으뜸조에서 딸림조로 넘어가는 이 구간에서 조성이 처음으로 불안정해집니다. 제1주제의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이행구가 없으면 두 주제는 그냥 병치됩니다. 이행구가 있기 때문에 두 주제 사이에 긴장과 관계가 생깁니다. 논증에서 반론이 제기되기 직전의 공기와 같습니다.
제2주제는 딸림조 또는 관계장조에서 등장합니다. 음악 이론가 헤포코스키(Hepokoski)와 다시(Darcy)는 이를 "음조적 갈등(tonal conflict)"이라 불렀습니다.4 제2주제는 제1주제와 대조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대조 자체는 구조적 필연입니다. 두 주제가 같은 성격이라면 발전부에서 탐구할 긴장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리고 두 주제는 음색만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조성 세계에 서 있습니다. 이 긴장이 발전부를 필연적으로 요청합니다.
이후 짧은 이행구가 흐름을 정리하고, 종결주제(Closing Theme)가 딸림조를 확립하며 제시부를 닫습니다. 그러나 이 종결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아직 딸림조에 있습니다. 으뜸조로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이 공중에 남습니다.
왜 이런 복잡한 구조가 필요했을까요. 18세기 중반까지 음악의 긴장은 주로 선율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나타 형식은 긴장을 조성 이동 자체로 만들었습니다. 긴장이 장식이 아니라 구조가 된 것입니다. 계몽주의가 감각적 아름다움보다 이성적 논리를 추구했던 것처럼, 소나타 형식은 선율의 매력이 아니라 조성의 논리로 음악을 구동했습니다.
발전부 — 탐구와 전개
| 발전부 구조 — 제시부의 주제 동기들이 해체·변형·전조됩니다. 조성이 불안정하게 흔들립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탐구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
발전부는 제시부에서 제시된 주제를 가지고 탐구합니다. 주제는 조각나고(fragmentation), 변형되고(transformation), 다른 조성으로 옮겨지며(modulation),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로젠(Charles Rosen)은 발전부를 "음악적 논리의 실험실"이라 불렀습니다.5 이 과정은 불안정하고 긴장감이 넘칩니다. 탐구의 과정입니다. 제시된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살피며,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합니다.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재현부 — 재진술과 논리적 확실성
| 재현부 구조 — 제시부와 유사한 구조로 돌아오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이행구가 전조하지 않습니다. 제2주제도 으뜸조로 돌아옵니다. 발전부를 거친 후의 종합입니다. |
재현부(Recapitulation)는 재진술이라고도 부릅니다. 제시부와 유사한 구조로 돌아오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행구가 전조하지 않습니다. 제시부의 이행구가 으뜸조에서 딸림조로 전조하며 불안을 설치했다면, 재현부의 이행구는 전조하지 않거나 으뜸조 안에서 맴돕니다.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확인입니다.
그리고 제2주제가 으뜸조로 돌아옵니다. 헤포코스키와 다시는 재현부를 "조성적 해결(tonal resolution)"로 정의하며, "제시부에서 제기된 조성적 문제가 재현부에서 해결됨으로써 소나타 형식은 완결된다"고 설명했습니다.6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발전부라는 탐구 과정을 거친 후의 종합입니다.
정(제1주제, 으뜸조) → 반(제2주제, 딸림조) → 합(재현부, 모두 으뜸조). 헤겔의 변증법이 철학의 언어로 정리되기 반세기 전, 소나타 형식은 이미 그 논리를 음악으로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논리적 구조 = 계몽주의 이성
로젠은 《고전주의 양식》에서 소나타 형식을 "음악적 논리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라 불렀습니다.7 본즈(Mark Evan Bonds)는 《말없는 수사학》에서 18세기 음악 이론가들이 소나타 형식을 실제로 수사학적 논증 구조로 이해했다고 밝혔습니다.8 키케로의 연설 구조(서론-본론-증명-결론)가 소나타의 제시부-발전부-재현부와 대응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이성이 감각 경험을 종합하여 지식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소나타 형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주제라는 '경험'을 제시하고, 발전부에서 그것을 탐구하며, 재현부에서 종합된 '지식'으로 도달합니다. 음악은 이제 신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논리적 구조 = 계몽주의 이성
로젠은 《고전주의 양식》에서 소나타 형식을 "음악적 논리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라 불렀습니다.⁷ 제시부는 명제를 제시하고, 발전부는 그것을 분석하며, 재현부는 종합을 이룹니다. 이 과정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추구한 이성적 사고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이성이 감각 경험을 종합하여 지식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소나타 형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주제라는 '경험'을 제시하고, 발전부에서 그것을 탐구하며, 재현부에서 통일된 '지식'으로 종합합니다.
음악학자 마크 에반 본즈(Mark Evan Bonds)는 이 연결을 더욱 명확히 했습니다. 그는 《말없는 수사학》에서 18세기 음악 이론가들이 소나타 형식을 실제로 수사학적 논증 구조(oration structure)로 이해했다고 밝혔습니다.⁸ 키케로의 연설 구조 — 서론(exordium), 본론(narratio), 증명(confirmatio), 결론(peroratio) — 가 소나타의 제시부-발전부-재현부와 대응된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이제 신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3.3 소나타 형식으로 듣기 — "듣는 논증"
하이든 교향곡 104번 D장조 "런던" 1악장
하이든의 교향곡 104번(1795)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소나타 형식의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쉰여덟에 런던으로 떠난 하이든이 그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30년을 정리하며 쓴 곡입니다.
1악장을 구조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시다.
서주 (Introduction, 1-34마디)
느린 템포의 Adagio. d단조로 시작해 불안정한 느낌을 줍니다. 이것은 본론이 아니라 예고편입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합니다.
제시부 (Exposition, 35-158)
Allegro로 템포가 빨라집니다. 제1주제가 D장조로 등장합니다. 단호하고 활기찬 선율입니다. 이 주제는 반복되고 확장됩니다.
경과부(transition)를 거쳐 제2주제가 A장조(딸림조)로 나타납니다. 제1주제보다 부드럽고 노래하는 듯한 성격입니다. 두 주제는 분명히 다릅니다. 성격도 다르고, 조성도 다릅니다. 종결주제가 A장조를 확립하며 제시부를 닫지만, 으뜸조로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이 공중에 남습니다.
관습적으로 제시부는 반복됩니다. 듣는 사람이 재료를 확실히 기억하도록.
발전부 (Development, 159-180)
제1주제의 처음 네 음을 가져와 조각냅니다(fragmentation). 이 작은 동기를 Bb장조, g단조, c단조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악기들이 주고받습니다(dialogue). 화성은 계속 움직이고, 조성은 불안정하며,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갑자기 조용해지고, 다시 크게 폭발합니다. 음악은 방향을 찾지 못한 채 계속 탐색합니다. 듣는 사람은 이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이든의 발전부는 질서 안에서의 탐구입니다. 긴장이 있지만 통제됩니다. 그러나 무언가 탐구하며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재현부 (Recapitulation, 234-349)
제1주제가 D장조로 돌아옵니다. 이행구는 이번에 전조하지 않습니다.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2주제도 D장조로 연주됩니다. 모든 것이 으뜸조로 돌아왔습니다. 발전부를 거쳤기 때문에 이 귀환은 처음의 자리가 아닙니다.
정반합의 논리적 확실성입니다. 긴장은 해소되고,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코다 (Coda, 350-365)
짧은 마무리로 D장조를 강하게 확인하며 끝납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 183, 1악장
1773년 잘츠부르크. 17세 모차르트가 교향곡 25번을 씁니다. 이 교향곡으로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완벽한게 독립된 거친 자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이든의 교향곡 104번을 들은 직후 이 작품을 듣는다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교향곡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시부: 폭풍
Allegro con brio. 전 현악기가 유니즌으로 격렬하게 상승하는 주제를 던집니다. g단조입니다. 단조!
하이든의 교향곡 104번은 D장조로 시작했습니다. 명랑하고 활기찼습니다. 모차르트의 25번은 어둡고 긴박합니다.
그리고 싱코페이션. 약박에 악센트가 붙으면서 음악은 끊임없이 비틀거립니다. 안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이든의 위트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위트가 아니라 폭풍입니다.
제2주제는 Bb장조(관계장조)로 나타나지만 위안을 주지 않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긴장되어 있습니다. 하이든의 제2주제가 부드럽고 우아했다면, 모차르트의 제2주제는 잠깐의 휴식일 뿐입니다.
발전부: 혼돈
하이든의 발전부는 논리적 탐구였습니다. 주제를 조각내고, 여러 조성을 거쳐, 질서정연하게 재현부로 돌아갔습니다.
모차르트의 발전부는 혼돈입니다. 조성은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고, 다이내믹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며, 음악은 출구를 찾지 못합니다. 이것은 탐구가 아니라 투쟁입니다.
재현부: 해결 없는 귀환
제1주제가 돌아옵니다. g단조입니다. 제2주제도 이번에는 g단조로 연주됩니다. 조성적 통일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하이든의 D장조 귀환과는 다릅니다. 하이든의 재현부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줍니다. 모차르트의 재현부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는 절망을 줍니다.
g단조는 해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같은 어둠 속에 있다는 확인입니다.
두 개의 소나타, 두 개의 세계
하이든 교향곡 104번과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둘 다 소나타 형식입니다. 제시부-발전부-재현부 구조는 동일합니다. 조성적 갈등이 재현부에서 해소되는 원리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이든은 계몽주의 이성의 구현입니다. 논리적이고, 명료하며, 위트가 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고, 탐구하고, 해결합니다. 듣는 사람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이해하고, 마지막에는 만족합니다.
모차르트는 인간 감정의 폭풍입니다. 격렬하고, 불안하며, 출구가 없습니다. 문제를 제시하지만, 해결은 위안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함께 고통받고, 마지막에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있습니다.
둘 다 "듣는 논증"입니다. 하지만 하이든의 논증은 "이성의 승리"를 보여주고, 모차르트의 논증은 "감정의 불가피함"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소나타 형식의 힘입니다. 같은 구조 안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담을 수 있다는 것. 형식은 틀이 아니라 언어입니다. 그리고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그 언어로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듣는 논증" (Wordless Rhetoric)
본즈는 소나타를 "듣는 논증"이라 불렀습니다. 소나타 형식은 말없이 논증을 펼칩니다. 주제는 명제이고, 발전부는 논리 전개이며, 재현부는 결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논증이 즉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시부에서 재현부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긴장이 어떻게 쌓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시간 속에서 듣습니다.
그레천 A. 휠록(Gretchen A. Wheelock)은 하이든의 음악을 "음악적 위트"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며, 하이든이 듣는 사람의 기대를 조작하고, 놀라게 하고, 만족시키는 과정을 통해 "음악적 유머"를 구현한다고 주장했습니다.⁹ 이것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능동적 참여자로 만드는 전략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결과를 알려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소나타는 사고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줍니다.
3.4 AI는 답을 준다, 소나타는 과정을 보여준다
AI의 발전부를 생략한 재현부
생성형 AI에게 질문하면 답이 즉시 나타납니다.
"소나타 형식이 뭐야?"
몇 초 뒤, 화면에 정리된 설명이 뜹니다.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간결하고 명료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차이는?"
역시 몇 초 만에 답이 나옵니다. 하이든은 형식의 대가, 모차르트는 선율의 천재. 요약된 비교가 제시됩니다.
이것은 효율적입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사고하는 과정입니다.
소나타의 과정
소나타 형식을 들을 때 우리는 답을 즉시 받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제시부에서 두 주제가 제시될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발전부에서 주제가 변형될 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재현부에 도달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해합니다. 아, 이렇게 해결되는구나!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이든 교향곡 104번 1악장은 약 8분입니다. 그 8분 동안 우리는 음악이 사고하는 과정을 함께 따라갑니다. 주제가 제시되고, 탐구되고, 해결되는 과정을 듣습니다.
이것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판단력 훈련
칸트는 《판단력 비판》(1790)에서 판단력은 가르칠 수 없고 오직 훈련을 통해서만 기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¹⁰ 규칙을 아는 것과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판단력은 경험 속에서 길러집니다.
소나타 형식을 듣는 것은 판단력을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제시부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발전부에서 복잡성을 경험하며, 재현부에서 해결을 이해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점차 음악적 논리를 스스로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로젠은 《소나타 형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구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지 경험하는 것이다."¹¹
ChatGPT는 답을 줍니다. 그러나 소나타는 사고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둘은 다릅니다.
AI 시대의 질문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답을 즉시 얻고 있습니다. 질문을 입력하면 요약된 정보가 나타나고, 검색하면 정리된 결과가 뜹니다. 이것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과정을 건너뛰고 있습니다.
ChatGPT는 소나타 형식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나타를 듣는 경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나타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AI가 제공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소나타가 제공하는 것은 사고의 과정입니다.
둘 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정 없이 결과만 있는 세상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점점 판단하는 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인간
18세기 계몽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4)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타인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¹²
소나타 형식은 바로 이 정신을 음악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답을 던져주지 않습니다. 대신 과정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함께 따라오도록 합니다. 그렇게 듣는 사람은 스스로 이해하게 됩니다.
AI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생각하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나타는 여전히 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3장 부록: 생각하는 AI — 그러나 과정은 아니다
o1의 등장
2024년 9월, OpenAI는 Chat gpt 4 o1을 발표했습니다.
이전의 GPT 모델들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o1은 "사고 과정(thinking process)"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바로 답하지 않고, 몇 초에서 몇 분 동안 "생각"하고, 그 과정을 요약해서 보여준 후 최종 답변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물으면:
[사고 과정]
먼저 문제의 조건을 정리하면...
이 경우 x = 3이라고 가정하면...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므로...
다시 y = 5로 접근하면...
따라서 답은...
[최종 답변]
답: 42
이것은 혁명적이었습니다. AI가 "블랙박스"에서 "유리 상자"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AI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Chain-of-Thought의 진화
사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2022년부터 Chain-of-Thought (CoT) 프롬프팅 기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단계별로 생각해봐(Let's think step by step)"라고 요청하면, AI가 중간 단계를 보여주며 추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Claude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단계별로 설명해줘"라고 하면:
1단계: 먼저 A를 확인합니다
2단계: 그 다음 B를 계산합니다
3단계: A와 B를 결합하면
결론: 따라서 답은 C입니다
o1은 이것을 자동화하고 고도화했습니다. 더 이상 "단계별로"라고 요청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o1은 자동으로 내부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추론하고, 그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과"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o1이 보여주는 "사고 과정"은 이미 정리된 과정입니다. 실시간으로 우리가 함께 경험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소나타 형식에서:
- 제시부를 듣는 순간 우리는 모른다 (어디로 갈지)
- 발전부를 듣는 순간 우리는 혼란스럽다 (어디로 가는지)
- 재현부를 듣는 순간 우리는 이해한다 (아, 이렇게!)
이것은 실시간 경험입니다.
o1의 사고 과정은:
- 이미 끝난 사고의 요약본
- 깔끔하게 정리된 단계
- 막다른 길, 실수, 혼란은 보이지 않음
이것은 사후 보고서입니다.
차이는 무엇인가
하이든 교향곡 104번을 듣는 8분과, o1의 사고 과정 요약을 읽는 10초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소나타를 듣는 것:
- 실시간으로 함께 여행
- 불확실성 경험 (어디로?)
- 긴장 경험 (어떻게 풀릴까?)
- 해결의 순간 (아!)
- 우리가 과정의 일부다
o1 사고 과정을 읽는 것:
- 이미 끝난 여행의 지도
- 정리된 경로
- 최적화된 단계
- 결론은 이미 나와 있음
- 우리는 관찰자다
로젠이 말한 "시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소나타에만 있습니다. o1은 여전히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정을 정리해서 보여줄 뿐, 과정 자체를 함께 경험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블랙박스 문제는 해결됐나
AI 윤리 논쟁의 핵심 중 하나는 "블랙박스 문제"였습니다. AI가 어떻게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o1은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AI의 추론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소나타 형식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단순히 "과정을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정을 함께 겪는다"는 것입니다. 발전부에서 음악이 g단조로 갈 때, 우리는 모릅니다. 다음에 c단조로 갈지, D장조로 돌아올지. 우리는 음악과 함께 불확실성 속에 있습니다.
o1의 사고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압니다. 사고 과정 아래에 "답: 42"가 적혀 있습니다. 과정을 읽는 것은 답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닙니다.
역설: 더 투명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고 과정" 자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o1의 thinking 출력도 결국 1조 개 이상의 파라미터를 가진 신경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신경망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모델이 커질수록 더 불투명해집니다:
- GPT-3: 1,750억 파라미터
- GPT-4: 추정 1조 이상 파라미터
- o1: 더 복잡한 구조 + 강화학습
그리고 "창발적 능력(emergent abilities)"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모델이 일정 크기를 넘으면 갑자기 나타나는 능력들입니다. 번역, 추론, 코딩... 누구도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데이터가 많아서"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이는 투명성의 환상입니다.
o1은 "사고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블랙박스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출력을 보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덜 압니다.
겉으로는 더 투명해 보입니다. 실제로는 더 불투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1과 Claude의 발전은 중요합니다.
최소한 "AI는 블랙박스다"라는 비판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후 보고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항상 8분짜리 교향곡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때로는 10초 요약이면 됩니다.
하지만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o1이 보여주는 것은 "사고 과정의 요약"이지, "사고하는 경험"이 아닙니다.
소나타 형식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후자입니다.
AI 시대에도, 아니 AI 시대이기에 더욱, 우리는 과정을 경험하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고의 창발적 능력은 사고하는 과정에서 길러지고, 판단력은 요약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록 2: 발전부 없는 세상 — 유니버스 25와 AI 시대
완벽한 환경이 만든 붕괴
1972년,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존 B. 칼훈(John B. Calhoun)은 하나의 실험을 발표했습니다.13 그는 생쥐를 위한 완벽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먹이와 물은 무한히 공급되었습니다. 천적은 없었습니다. 온도는 쾌적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름은 "유니버스 25"였습니다.
초기에는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일정 밀도를 넘자 이상한 일이 시작됩니다. 수컷들이 싸움을 포기했습니다. 영역을 방어하지 않고 그루밍만 반복했습니다. 암컷들은 새끼를 낳지 않거나 낳아도 방치했습니다. 사회적 위계가 무너지고, 짝짓기 행동이 사라졌습니다. 칼훈은 이 상태를 "행동 싱크(Behavioral Sink)"14라 불렀습니다.
먹이는 남아 있었습니다. 공간도 있었으나 개체수는 0을 향해 수렴했습니다. 유니버스 25는 결국 멸종으로 끝났습니다.
무엇이 사라진 것인가
칼훈의 실험이 충격적인 이유는 부족함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정반대였습니다. 생존을 위한 긴장과 탐구의 필요성이 사라졌을 때 종으로서의 역동성이 붕괴했습니다. 즉! 소나타의 발전부가 사라진 것입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유니버스 25의 쥐들은 제시부도 없고 발전부도 없고 재현부만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긴장이 없었기 때문에 해결도 의미를 잃었습니다. 탐구가 없었기 때문에 종합도 불가능했습니다.
AI 시대의 유니버스 25
생성형 AI는 인간에게 지식의 발전부를 생략해줍니다. 에이전트는 문제 설정의 제시부마저 대신합니다. 즉 모든 것이 힘들이지 않고 사고의 과정 없이 주어집니다. 유니버스 25와 구조적으로 같은 환경이 지식 노동의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도구를 사용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훈의 실험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긴장과 탐구가 구조적으로 제거된 환경에서, 그것을 요구하는 능력 자체가 퇴화하지 않는가.
발전부를 지키는 것
모차르트는 그의 첫 번째 피아노 소타나 1번 K.279에서 형식을 배웠습니다. 그 형식을 완전히 소화했을 때, 그는 마지막 교향곡 no. 41, '주피터",K.551 에서 그것을 초월했습니다. 발전부를 직접 통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유니버스 25의 쥐들에게는 그 여정이 없었습니다. 탐구할 필요가 없었고, 오류를 겪을 필요가 없었으며, 형식을 익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완벽한 환경에서의 소멸이었습니다.
소나타 형식은 발전부 없이 재현부로 직행할 수 없습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도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사고하고 행동하여 발전부를 지키는 것입니다.
소나타는 25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발전부가 없으면 재현부는 없다는 것을!
각주
1 Wolff, Christoph. Johann Sebastian Bach: The Learned Musician. New York: W. W. Norton, 2000, p. 432.
2 Heartz, Daniel. Haydn, Mozart, and the Viennese School, 1740–1780. New York: W. W. Norton, 1995, pp. 23–27.
3 Webster, James. "Haydn's Op. 33 String Quartets." In Haydn Studies, ed. Jens Peter Larsen. New York: W. W. Norton, 1981, p. 145.
4 Hepokoski, James, and Warren Darcy. Elements of Sonata Theo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 17–22.
5 Rosen, Charles. Sonata Forms. Revised ed. New York: W. W. Norton, 1988, p. 264.
6 Hepokoski and Darcy, Elements of Sonata Theory, pp. 230–235.
7 Rosen, Charles. The Classical Style: Haydn, Mozart, Beethoven. New York: W. W. Norton, 1972, p. 30.
8 Bonds, Mark Evan. Wordless Rhetoric.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 pp. 85–90.
9 Wheelock, Gretchen A. Haydn's Ingenious Jesting with Art. New York: Schirmer Books, 1992, pp. 45–67.
10 Kant, Immanuel. Critique of Judgment (1790). Trans. Werner S. Pluhar. Indianapolis: Hackett, 1987, p. 169.
11 Kant, Immanuel. "An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Enlightenment?" (1784). In Practical Philosophy, ed. Mary J. Grego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 17.
12 Rosen, Sonata Forms, p. 1.
13 Calhoun, John B. "Death Squared: The Explosive Growth and Demise of a Mouse Population."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vol. 66, no. 1, 1973, pp. 80–88.
14 Calhoun, John B. "Population Density and Social Pathology." Scientific American, vol. 206, no. 2, 1962, pp. 13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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